하회선유줄불놀이는 배를 타고 노니는 선유와 우리나라의 전통 불놀이인 줄불놀이가 결합된 형태로서, 과거 하회의 양반들은 칠월 기망이면 선유줄불놀이를 하였다. 이때 배를 타고 가무악을 즐기면서, 하회마을의 방풍림인 만송정쑤에서 화천을 가로질러 부용대로 이어지는 줄불, 맞은편 절벽 위의 부용대에서 불타는 솟갑단을 절벽 아래로 던지는 낙화,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화천 위를 수놓아 떠다니는 달걀불을 함께 감상하였다.
현대의 외래 불꽃놀이가 화약을 이용하여 불꽃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방식이라면, 줄불놀이는 뽕나무 숯가루를 이용하여 은은한 불꽃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점이 차이이다. 특히 허공에 떠 있는 줄불이 비처럼 떨어져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더불어 맞은편 부용대 위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불덩어리인 낙화, 강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달걀불까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가히 전통 불놀이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또한, 배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강 위를 유람하는 선유객의 모습은 산수와 인간의 조화로움을 보여주며 양반 놀이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선유는 강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며 절경들을 감상하는 것으로서, 소동파가 즐겼던 적벽의 놀이에서 영향을 받았다. 하회마을의 선유는 늦어도 16세기 이후부터 행해졌음이 확인되며, 선유와 줄불이 결합된 것은 늦어도 19세기 후반부터 확인이 된다. 하회의 선유줄불놀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명맥을 이어와 현재 하회 주민들의 노력으로 인해 칠월 기망 외에도 연중 수차례의 행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기록상 하회마을의 선유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서애 류성룡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이 주도한 1562년 칠월 기망의 선유 때 지은 서애의 시이다.
입암이 서애에게 소동파가 즐겼던 적벽의 놀이에 대한 시를 지으라 하자 서애는 즉석으로 시를 지은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마을의 북서쪽에 길게 늘어진 절벽인 부용대와 여러 기암괴석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화천이 어우러져 소동파가 즐긴 적벽의 놀이를 재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하회의 선유와 함께 줄불놀이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행산 류도순(1842~1910)의 『행산유고』에 실린 시이다. 그의 시를 통해서 적어도 19세기 말에는 하회의 칠월 기망에 열리는 선유에 줄불놀이가 함께 연행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안동부사가 참여한 이 선유줄불놀이에는 치장한 배와 퉁소와 북이 등장하며, 음주가무가 함께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놀이였다.
하회의 선유줄불놀이는 일제강점기인 1910~1920년대 초에도 연행된 것이 확인되며, 안동 읍치의 영호루(映湖樓)에서 시작되어 병산서원을 지나 하회로 이어진 유장한 놀이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반부터는 사회ㆍ경제적 상황이 악화함에 따라 전승력이 약화하였고, 특히 태평양전쟁 시기부터 해방 때까지는 놀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이후 중단되었던 선유줄불놀이는 하회마을의 류창식과 류시승이 준비와 진행을 주도하여 해방 이후인 1948년 정부수립을 기념하여 벌어졌다. 그 뒤 선유줄불놀이는 벌어지지 않다가 1968년 안동풍년제(현 안동민속축제)에서 재현되었고, 1974년에 안동에 방문한 외국인 선교사들과 연세대학교 병원 관계자들의 하회마을 방문을 기념하여 열렸다.
1980년부터는 안동공업고등학교, 1990년부터는 풍산종합고등학교에서 줄불놀이의 전승을 도왔고, 마침내 1990년 6월 2일에 하회마을에서 선유줄불놀이를 연행하면서 해마다 안동민속축제 등에서 놀이를 펼쳤다. 현재는 하회마을에서 칠월 기망에 국한되지 않고 연간 수차례의 선유줄불놀이가 행해지고 있다.